*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제 블로그 글을 퍼온 것임을 밝힙니다.
심심해서 시간을 보내다 저의 인생 영화 중 하나인 조커를 오랜만에 한 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감명 깊었던 영화지만 다시 보아도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았는데 생각난 김에 제가 주목한 포인트들을 위주로 간단한 리뷰를 남겨보고자 합니다.
# 감정이입에의 빌드업
영화는 고담 시의 더럽고 참혹한 환경, 정부의 무능함을 드러내며 음울한 분위기로 막을 엽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거울을 보며 광대 분장을 하는 아서 플렉의 모습과 참담한 현실을 뒤로하고 억지웃음을 지어보려 손으로 입꼬리를 올리지만 웃지 못하는 얼굴, 흘러내리는 땀은 오히려 슬픔을 가중시킵니다.
조커가 되기 전 아서 플렉이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짧았지만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는 몇 가지 임팩트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며 금세 관객을 끌어들입니다. 광대 분장을 하고 거리에서 광고를 하다 비행청소년 무리에 집단 구타를 당하고 뻗은 그의 모습, 사정도 모르고 걱정은커녕 광고판을 훼손시켰다며 추궁하는 광대 업체 사장과의 논쟁, 코미디언이 되길 원하는 아들에게 격려가 아닌 "넌 재미없으니 불가능하다."라는 투의 말을 던지는 그의 어머니와의 대화 등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장면들의 연속이지만 칙칙한 음악과 호아킨의 메소드 연기가 영화 속 아서 플렉의 감정에 어느새 빠져들게 만듭니다.
# 음산한 음악에서 경쾌한 춤으로
아서 플렉은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고 잠깐의 혼란을 느끼다 춤을 추며 순간 자유로운 영혼을 만끽합니다. 인생 스탠스의 변화 조짐을 보이는 아서에게 찾아온 소식은 비극적입니다. 모시고 살던 어머니가 사실은 자신을 병에 시달리게 한 주범이며 학대를 방관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마 불행했던 그의 일평생 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아서는 어머니를 살해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비극적인 코미디언 아서 플렉에서 빌런 조커로의 변모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씬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그는 광대 '소품'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카락까지 직접 물들임으로써 비로소 '조커' 그 자체로 거듭납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얼굴에 띤 환한 미소와 화려한 춤은 현실에서의 해방감을 경쾌하게 묘사합니다.
# 그러나 점점 멀어지는
호아킨 피닉스의 훌륭한 연기는 분명 조커라는 캐릭터에 연민을 느끼게 했지만, 그의 계속되는 불쾌한 행동들과 망상을 폭로하는 장면들은 작품에 몰입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에 대한 동정심을 잃고 악당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또 한편의 시각에서는 조커가 극 중 내내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모방 범죄의 위험을 일으키고 찝찝한 감정을 남긴다고 보기도 하지만, 저는 위에 언급한 요소들로 인해서 일반적인 빌런 영화로서의 목적 또한 효과적으로 달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망상은 과연 어디까지?
<조커>에서 마지막 포인트이자 가장 좋았던 점은 정신적 망상을 흥미롭게 다뤘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과거의 사실, 현재의 사실인 것만 같던 장면들이 알고 보니 고도의 정신질환자 아서 플렉의 환상 속 이야기에 불과했다는 점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때문에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답할 수 없는 의문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영화 속 망상이 전부가 아니라 아서가 살인을 저지르고 조커가 되어 거리를 활보하는 모든 것이 단지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의문. 비록 토드 필립스 감독의 확실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이 그저 환영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최근 모 사이트의 일도 생각나고 그래서 극 중 가장 강렬했던 대사로 리뷰를 마무리합니다.
"I used to think that my life was a tragedy... but now I realize, it's a fucking comedy."
<JOKER>
개봉일. 2019.10.02
장르. 범죄, 드라마, 스릴러
감독 토드 필립스
주연 호아킨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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