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보유 포인트00

라쇼몽 (1950) 강스포(?) 줄거리 설명 및 리뷰

코리도라
👀90👍4

오랜만에 라쇼몽을 다시 보게 됐는데 짧게 리뷰를 쓰고 싶어져서 글 한번 올려보려고 합니다.

 

솔직히 75년이나 된 영화라 스포 태그가 의미 있나 싶지만 그래도 아직 내용을 알지 않은 채로 보고 싶으신 분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글에 스포라고 적었습니다.

 

라쇼몽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요, 라쇼몽이라는 이름은 한자로 나성문을 뜻하는 것으로, 헤이안 시대 수도 였던 헤이안쿄 (현재 교토)에 있던 수도의 대문 명이라고 합니다. 수도를 관통하는 대로의 남쪽 끝에 있었다고 하니, 남대문 같은 곳인가 싶네요. 이제는 주택가가 되어버려 비석 하나 세워두었다고 합니다.

 

 

줄거리

 

각설하고, 영화는 소위 말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비가 쏟아지는 어느날 한 하인이 비를 피해 나성문 밑으로 찾아오게 되는데, 여기서 한 나무꾼과 스님이 멍하니 앉아 ‘아무래도 모르겠어’라고 중얼 거리는 걸 보게 됩니다. 하인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자 나무꾼과 스님이 최근에 그 마을에 있었던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건은 숲 속에서 벌어지는데, 어느날 나무꾼이 벌목을 하러가다가 한 사내의 시체를 발견하여 관아에 신고합니다.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살인자가 발견되는데, 그 살인자는 타죠마루라는 악명 높은 산적으로 타죠마루에 따르면 자신이 죽인 남자는 사무라이였다고 합니다.

 

어느날 낮잠을 자고 있던 타죠마루 앞을 사무라이와 그의 아내가 지나가게 되고, 아내의 미모를 본 타죠마루는 그녀를 차지할 생각으로 사무라이는 속임수를 써 포박하고, 아내는 겁탈합니다. 이후 나무꾼이 칼에 맞아 죽은 사무라이를 발견한 것인데요, 사건의 당사자인 3인 (산적, 아내, 무당이 불러낸 사무라이의 혼)의 진술이 모두 달라 사건의 진실이 미궁에 빠집니다.

 

우선 산적은 본인이 속임수를 써서 사무라이를 포박하고 단도를 들고 저항하던 아내를 제압해 겁탈한 건 사실이지만, 사무라이와는 정당한 결투로 그를 죽였으며, 자신과 칼을 스무합 이상 맞댄 사무라이의 무력이 대단했다고 진술합니다.

 

그러나 아내의 진술로는 그녀를 겁탈한 뒤 도적은 도망쳤으나, 남편인 사무라이가 자신을 냉대하고 혐오스런 차가운 눈빛으로 보는 것에 그만 정신이 혼미해져 혼란 속에서 들고 있던 단도로 남편을 죽였다고 진술합니다.

 

하지만 이는 다시 무당이 강신한 사무라이의 혼의 진술과는 다른데, 사무라이의 진술로는 아내가 도적을 따라가겠다며 도적에게 사무라이를 죽이라고 했고, 이에 도적은 아내를 내치고 사무라이를 풀어주고 옹호해 줬다고 합니다. 그 후 사무라이는 스스로 자결했다고 진술합니다.

 

이후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무꾼을 수상하게 여긴 하인이 캐묻자 나무꾼이 말하기를, 관아에는 엮이기 싫어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자신은 모든 것을 보았다며, 자신이 본 사건을 설명해 줍니다.

 

도적이 아내를 겁탈한 뒤, 아내에게 푹 빠진 도적은 자신과 같이 가 달라고 무릎 꿇고 빌었고, 아내는 여자는 선택을 할 수 없다며 자신의 단도를 사용해서 사무라이를 풀어 줍니다. 이를 남자끼리 싸워서 정하라고 받아들인 도적이 검을 뽑으려고 하자 사무라이가 난 저런 지조 없는 여자 때문에 목숨 걸 생각이 없다며, 오히려 아내에게 왜 자결하지 않았냐 소리치고, 이를 본 도적도 마음을 바꿔먹고 여자는 원래 약하다고 말하며 그냥 떠나려고 합니다.

이에 아내는 갑자기 광소를 터트리며 남편에게는 꼴에 사무라이이고 자신의 남편인데, 본인이 도적을 죽이고 난 뒤에 자신에게 자결을 강요하는게 맞지 않느냐며 도발하고, 도적에게는 지루한 자신의 삶을 바꿔줄거라 생각하고 타죠마루라는 악명 높은 산적이기에 내심 좋아했는데, 네가 남자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힘으로 나를 차지해야하는게 아니냐며 사무라이와 이간질을 합니다. 이에 도발 당한 두 남자는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누구의 진술과도 다른 보는 사람이 부끄러운 어마어마한 개싸움을 이어가고 마지막엔 살려달라고 비는 사무라이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죽입니다. 이후 여자와 상처입은 도적은 따로따로 도망치게 됩니다.

 

이 진실에 스님은 인간의 악독함에 상처를 입고, 하인은 그럴 줄 알았다며 원래 인간은 자기 좋을대로 거짓말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때 나성문의 뒤쪽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하인이 뛰어가보니 부모에게 버림 받은 갓난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를 들어올린 하인이 아이를 감싸고 있는 비싸보이는 포대기를 훔쳐가려고 하자 나무꾼이 크게 반말하며 나무라는데, 하인도 나무꾼에게 너도 나와 다를 바 없지 않냐며, 이야기 속에서 여자의 단도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걸 네가 훔친 것을 나는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나무꾼은 아내의 단도를 훔쳤기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하인은 그를 비웃으며 결국 사람은 다 똑같다고 말하며 빗속으로 포대기와 함께 사라집니다.

 

아이를 들고 있던 스님은 나무꾼이 아이를 받으려고 하자 아이도 팔아먹으려고 하냐며 호통치고, 이에 나무꾼은 슬픈 목소리로 자신이 이미 여섯 명의 고아를 키우고 있는데 일곱 명 키우는게 더 힘들 것 같지는 않다며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단도를 훔쳤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에 스님은 사과하며, 나무꾼 덕택에 사람의 선함을 다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말하고 옅게 웃으며 아이와 함께 떠나는 나무꾼을 뒤에서 배웅하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보고 난 뒤 생각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주제는 “인간의 자기 미화”와 “그럼에도 필요한 신뢰”입니다.

도적은 자신의 악명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본인이 무릎 꿇고 여자에게 빌었다는 것과 추하기 그지 없었던 싸움 과정을 미화하여 “사무라이와의 싸움을 멋지게 이긴 사나이”로 자기 자신을 미화했습니다.

 

아내의 경우 시대 특성 상 남자 둘을 싸움 붙여 자기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받을 일이기 때문에, “큰 일을 겪고 남편에게도 버림 받아 정신이 혼미해져 남편을 죽인 불쌍한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미화했습니다.

 

사무라이의 경우 산적에게 진 것도 모자라 아내에게만 자결을 종용 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산적은 결투에서 이긴 후 상대를 풀어주는 대인으로 묘사하여 도적에게 속은 사무라이라는 사실을 미화하고, 아내는 자신을 배신한 여자로 묘사하여 아내를 지키지도 못했으면서 자결만 종용한 일을 아내의 탓으로 돌리고, 마지막으로 자결했다고 거짓말하여 도적에게 진 사무라이라는 사실도 없었던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결국 영화는 사람은 모두가 이기적으로 자신 좋을 대로 기억을 왜곡한다는 점을 먼저 시사합니다.  그러나 이후 나무꾼도 그 상황에 자신의 이득을 보려고 단도를 훔쳤다는 묘사가 나오지만, 사실은 기르는 아이들을 위해 그런 것임도 암시합니다. 

영화는 희망적인 음악과 연출로 떠나가는 나무꾼을 쳐다보는 스님과, 걸어가는 나무꾼의 옅은 미소를 보여주면서 끝이 나는데요, 나무꾼이 진실은 말한 것인지는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이기적인 인간들의 삶이고 사회이더라도 나무꾼의 말에 희망과 신뢰로 상처를 치유 받은 스님처럼 어느 정도 선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50년대 영화이기 때문에 장비적인 측면에서 요즘의 영화처럼 부드럽게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손으로 들고 (예상이지만) 김블도 없었을 시절에 발로 따라 붙으며 찍은 것이 느껴지게 화면이 흔들리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야기가 흥미롭고, 영화의 내용 자체가 딱히 엄청난 편집 기술이나 영상미가 필요한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각 인물이 묘사하는 사건의 재구성들에서 기억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연출로 묘사하는지, 어떻게 자기 자신을 미화한다는 것을 연기로 묘사하는지도 재밌게 보았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사무라이의 진술 장면에서 배신한 아내가 먼저 도망치고 도적이 그 뒤를 쫓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쳐다보는 포박된 사무라이를 정면 쇼트로 잡아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사무라이의 머리 위 공간을 아주 짧게 잡아 영상을 굉장히 답답하게 보이게 만드는데요, 정적인 장면이 많아 편집점을 많이 넣으면 잡스러워 보이니 이런 연출을 사용해서 사무라이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기적인 부분을 보자면 저는 원래 과장되게 표현하는 기법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산적이나 아내 등의 연기를 그 사람의 기억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이해가 더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광기의 표현이나 이런 부분은 사실 이 이후에 너무나 많은 좋은 배우들과 연출자들의 영화가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와닿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섬세한 감정 표현이 보이는 표정이나 눈빛 연기 등을 보면 영화가 이토록 오랫동안 고전으로 인정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나 사용된 기법이 아무리 좋더라도, 연기가 정도 이상으로 어색하고 나쁘면 훌륭한 교재는 될지언정 고전이라는 이야기는 못 듣게 된다는게 저의 생각인데 요즘의 연기를 더 좋아하고 그에 더 익숙한 제가 봐도 연기 때문에 크게 거슬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외 이야기

 

플래시백 기법으로 각자의 주관적인 이야기를 묘사하는 방법을 이 영화가 최초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모든 매체 최초는 아닐 것으로 생각되고 영화에서 처음 사용됐다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이렇게 오래된 영화임에도 재미가 있는 것을 보면 이야기의 힘을 잘 보여주는 것 같네요.

댓글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너는 댓글 달 계획이 있구나?

댓글

무코 숏드라마 Top 10

11
22
33
44
55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

👍

무코 숏드라마 Top 10

11
22
33
44
55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