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명: 페니키안 스킴
🗓 날짜: 2025년 5월 28일 (수)
🕑 러닝타임: 오후 12시 25분 ~ 오후 02시 16분 (101분)
📌 장소: 압구정 CGV
🌟🌟🌟🌟 (4/5점)
"웨스 앤더슨이 설계한 감정의 도시, 그 안에서 길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
<페니키안 스킴>은 허구의 중동 국가 ‘페니키아’를 배경으로, 대규모 산업개발 프로젝트의 종말과 그 속에서 재회하게 된 한 부녀의 관계 회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자자 코다’는 이 프로젝트의 설계자이자 추진자다. 그는 막대한 권력과 자산을 손에 쥐었지만, 개인의 삶에서는 오래전 딸 ‘리즐’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다. 그런 그가 딸을 찾아가 화해를 요청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리즐은 현재 수녀 수련 중이다. 고요하고 단절된 수도원의 세계와, 자본과 정치가 얽힌 외부 세계는 극명하게 대비되며, 영화는 그 사이에 선 인물들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 1. 시각적 연출: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이 예술’
웨스 앤더슨 감독은 언제나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페니키안 스킴>은 그의 스타일이 가장 정제되고도 풍부하게 발현된 작품이다.
예를 들어 자자가 리즐과 처음 만나는 장면. 수도원의 정적과 햇살은 무겁고 복잡한 감정을 말없이 설명한다. 말보다 조명이, 대사보다 구도가 감정을 드러낸다. 이는 관객에게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각적인 이해’를 선사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공간”을 인물의 감정 확장으로 사용한다. 수도원의 단순한 복도, 정부 회의실의 냉정한 조명, 자자의 유년 시절이 남아 있는 별장 등은 모두 심리적 맥락과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각적 경험이 곧 감정적 경험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 2. 배우들: 캐릭터를 넘어서, 사람을 연기하다
‘베니시오 델 토로’ (자자 코다 역)
베니시오 델 토로는 이 영화에서 ‘성공한 사업가’라는 겉모습 이면에 숨은 상실감과 회한을 거의 표정만으로 표현한다.
그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처럼 보이고, 권력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정치인처럼도 보이며, 인생의 끝에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특히 그가 리즐과 처음 눈을 마주칠 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 짧은 순간이 관객에게 전하는 무게는 실로 엄청나다. 자자의 감정은 말이 아닌 침묵 속에서 터진다.
‘스칼렛 요한슨’ (유엔 외교관 역)
그녀는 이 영화에서 단순한 ‘조연’이 아니다. 페니키아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핵심 키를 쥔 인물이자, 자자 코다와 감정적 교류를 나누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자신의 캐릭터를 단순한 ‘정치적 조언자’로 소비하지 않고, 권력 속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책임의 무게를 느끼는 인물로 입체화시킨다.
그녀가 자자에게 조언하는 장면에서는, 단 몇 줄의 대사에도 뚜렷한 철학과 감정이 배어 있다. 관객은 그녀를 통해 “합리적 사고를 하면서도 인간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게 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자자의 친구이자 정치적 라이벌 역)
그는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자자와 오랜 친구였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정치적 입장에 선 인물. 컴버배치는 이 미묘한 관계를, 차가운 말투와 유려한 제스처, 그리고 아주 복합적인 표정 연기로 풀어낸다.
그가 자자에게 “너는 늘 네가 옳다고 생각했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의 핵심 질문 중 하나다. 관객은 그 장면을 통해 "나는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나?"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 3. 주제: 자본, 신념, 가족…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
영화의 외피는 산업 프로젝트이지만, 본질은 인간의 선택에 있다.
자자는 페니키아 경제를 근대화시키는 대규모 개발계획을 이끌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이 남기고자 하는 ‘유산’에 불과하다.
반면 딸 리즐은 세속적인 것과 거리를 둔 수도원에 있다. 둘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한 쪽의 선택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며, 누구를 위해 그 선택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후회는 늦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철학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삶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맞닥뜨리는 물음들을, 부드럽고도 단단하게 꺼내 보여준다. 그리고 그 답은 관객 각자가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 4. 감정의 리듬: 울리지 않고 울게 만드는 영화
<페니키안 스킴>은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대신 서서히 스며든다.
자자와 리즐이 마주 앉아 침묵하는 장면, 서로를 보지 않고 걷는 장면, 마지막에 서로를 인정하는 짧은 눈빛 교환… 이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영화가 끝날 때쯤 관객의 가슴 한켠에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 결론: 인생 영화가 된다는 건 이런 거다
<페니키안 스킴>은 웨스 앤더슨이 만든 또 하나의 ‘정확한 세계’다. 하지만 그 세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을 만큼 정교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인간적이다.
그 안에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상처, 사랑, 후회, 용서, 기대가 있다.
이 영화는 단점이 없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단점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완벽하며, 감정적으로 정제되어 있고, 철학적으로 충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영화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감각적인 영상미를 좋아하는 분"
"감정과 철학이 균형 있게 담긴 이야기를 선호하는 분"
"웨스 앤더슨의 세계관에 빠져본 적이 있는 분"
"그리고 삶에 대한 조용한 위로가 필요한 모든 분들"
영화 <페니키안 스킴>은 단순히 관람하는 대상이 아니라, 경험해야 하는 세계다.
한 번 본 사람은 “예뻤다”고 말할 것이고, 두 번 본 사람은 “생각하게 된다”고 말할 것이며, 세 번 본 사람은 조용히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꺼내게 될 것이다.
웨스 앤더슨은 이 영화로 증명했다.
예술이란, 결국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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